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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멩~ 화상이다

제 목 : 세월아 네월아 찹쌀조청 고으다가


어제는 참 바쁘면서도 기쁜 날이었어요.
저에게는 아흔 넘으신 친정어머님이 계시는데 음력 6월 7일이 생신이세요.
저희 가족들은 해마다 엄마 생신을 가장 가까운 주말 어느날로 앞당겨
가능한 한 많은 형제들과 그 자녀들이 모일 수 있게 하고 있는데요.

몇년전 저희 땡기아배가 말하기를
"앞으로 장모님 살아 계시는 동안 해마다 장모님 생신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집사람 바쁘게 사느라고 어머님과 형님들께 늘 소홀한 거 잘 압니다.
저희에게도 기회를 주시는 뜻으로 장모님 생신을 제게 맡겨 주세요"...

그후로 몇년째 땡기아배랑 제가 엄마 생신 가족모임을 주관하고 있지요.

물론 집에서 모든 음식을 준비하고 이곳에서 모임을 갖지는 못합니다.형편상...
해마다 장소를 바꿔가며 음식점을 예약하고
그 모임이 끝난 다음엔 저희집으로 와서 다과를 나누며 담소...
한여름 일요일 어느 하루는 그렇게 보내고 있습니다.

그게 바로 어제였어요.

기쁘게도 어제는 저희 엄마의 세례명축일이기도 해서
온가족이 모두 더더욱 뜻깊은 하루를 보냈습니다.

마음같아서야 많은 걸 준비하고 싶었지만
근 두달째 저를 둘러싼 이런 저런 일들이 사람을 지치게 하고 있어서
간단하게 약식 케익(인터넷 사이트에서 어느분이 올려주신 방식으로 기존의 제 방법에 약간 변형을 가함)을 만들고
과일 몇가지 챙기고 시원한 음료 얼음 띄워서 차려낼 준비해놓고


외할머니 살아 계시는 동안 한번이라도 더 뵙는 게 도리라면서
아들넘도 토요일 오후에 내려와 어제 가족모임 마친 후 곧장 올라갔어요.

저...많이 바빴겠죠?


"마이 피곤하제?  당신 애 마이 썼다 "

"내가 한 게 뭐 있나...해마다 맘써주는 당신이 고맙지"



땡기아배의 한마디에 온몸의 피로가 싹 가시는 한편
내려와서 하루만에 다시 올려보내야 하는 아들넘땜에 허전한 마음도 한편..그랬습니다.


푸짐하게 먹은 점심땜에 저녁시간이 되어도 둘다 배가 빵빵
아주 간단히 먹는 듯 마는 듯 해결하고 나니 심심해요.^^

요즘 냉동실 냉장실 비우는 작업이 한창이라
이참에 찹쌀가루 남은 거 해결보자로 맘을 먹고

다저녁때 엿기름 불린 물에 찹쌀가루 투하,
두시간 있다가 약한 불에 끓이기,

....잠잘 시간 되어서 내려놓고 잠자리...zzz

오늘 새벽에 일어나 면보로 쥐어짜기...
아침차리면서 깊은 남비에 담아 끓이기...

출근하기 전에 남비뚜껑을 열어 얼마나 졸아들었나 확인하려는 순간 앗뜨거
살짜꿍 아주 아주 조금 살짜쿵 남비뚜껑이 제 왼편 팔뚝에 닿았습니다.

제가 왼손잽이거든요.ㅠㅠ

발갛게 피부색이 변하긴 했는데 출근하기 바쁜 월요일이라 그냥 나왔어요.
왼편 팔뚝의 쓰라림이 운전하는 내내 성가셨지만
오래전 울엄마 하시던 말씀을 떠올리며 실실 웃었습니다.

제가 신혼이던 시절
이런 저런 사유로 대학졸업반 시동생을 데리고 있었는데(25년전)
하숙밥을 먹던 시동생이 형수밥을 얼마나 좋아하던지
일주일에 네번 정도 도시락을 싸주었어요. 어떻게 그리 했던지 참...ㅠㅠ

아침마다 도시락 반찬 새로 만들어대느라 이궁리 저궁리 바빴는데
요즘은 생전가야 잘 안하는 튀김도 맹글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날도 버섯을 튀기다가 튀김옷이 탁 튀기를 제 입술 바로 아래가 앗뜨거!!
얼마나 쓰라린지 물집도 봉긋 솟아오르구요.

출근후 엄마의 전화를 받자마자 속상하다고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니
도덕교과서표 울엄마

"착한 일하다 다친 건 흉 안진단다.
우리 딸 입술 아래 흉 안지게 하늘이 돌보실 끼다."


...

출근길 혼자서 실실 웃을 만하지요, 여러분.

흠멩 화상이다~하였지만 오늘 제 왼팔뚝도 살짝 연분홍으로 스쳐만 지날 것 같습니다.
식재료의 합리적인 소비...그 어여쁜 과업을 수행하던 중 입은 화상이니 말입니다.
이제 올가을 찬바람 불기 전에는 조청 고으는 일 없지 싶어요.
그나저나 오늘 저녁 퇴근하자마자 마저 고아야 하는데 넝감이 눈총줄까봐 벌써부터 움츠려드는군요.

(고마 해라...얼매나 묵는다꼬 그래 해쌋노?" 귀에 딱지가 앉은 멘트입니다)

       
제목: 흠멩~ 화상이다


글쓴이: 땡기모친(땡모)

등록일: 2009-07-27 14:29
조회수: 2795 / 추천수: 145
대구띠기   2009-07-27 22:36:04
고마 봐 주이소.
그기 빤드깨미 아입니껴?

그라마 안 봐주실까예?ㅎㅎㅎ
저도 디기는 디기 자주 디는데......
그 흉이 다 남아있으면 거의 표범일건데.ㅠ.ㅠ
주왕산   2009-07-28 07:20:38
친정모친 생신 축하드립니다.
울 집도 그날이 오면 비슷하게 행사진행을 합니다.

착한 일(아니 당연한일)하다 딘 피부가
표범껍데기 처럼 얼룩덜룩 변할리는 전혀 없지요.

무엇보다 보통 엄마들은 큰공부하는 자식들에게
'니는 안내려와도 된다'
하는데 땡기군은 스스로 귀한 시간 짬을 내서

행사에 참여하고 집안 식구들과 친목 하였다니
평소 땡모님의 자식 교육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가네요.
엄마가 삼복더위에 땀 뻘뻘 흘리며 부모님을 위해

펄펄끊는 냄비에 피부까지 구워가면서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갔으니 지도 장가가면
알아서 잘 하겠지요.

그러나 장가가서 저검마 한테 잘해야 되는데
처가식구들에게만 신경 팍~ 써는 그런 현상은
설마 없겠지요..^^
치자꽃   2009-07-28 18:17:04
나두 젊을때 발에 큰 화상을 입었었는데
우찌 흉터가 없나 궁금했었는데
그럼 나두 ~ㅋㅋㅋ
땡기모친(땡모)   2009-07-29 07:19:14
대구텍!!님
"집에 와서 푹 빠져드는 유일한 도락이니 쫌 봐주소"했습니다.
그사람 허허 웃고 맙니다.
땡기모친(땡모)   2009-07-29 07:22:05
주왕산님.
부모로서 짜슥한테 이렇다 할 해준 게 없어서 늘 미안치요.
장가 가주면 고맙고 반갑고
가족수 늘어나니 든든하고요.

본가보다 처가에 신경이 더 가는 것도 훗날의 상황에 따라
녀석이 판단한 결과일 테니 받아들여야지요.

그나저나 수명이 길어져서 혹여 병중인 몸으로 오래 짜슥을 맘쓰게 하지 않을까
그것만 가끔씩 조심스럽습니다.

건강하고 즐거움이 넘치는 여름 되십시오.
땡기모친(땡모)   2009-07-29 07:23:23
치자꽃님...울엄마 말씀이 백번 옳다 싶습니다.

젊은 시절 시가에서 어른 음식 챙기다 그리 되셨지요?

치자꽃님 글에서 작고하신 시아버님 이야기 종종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 왕언냐 튼실 든든하니 건강하셔야 하는데...뵙고 싶습니다,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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